[티티씨뉴스=글·사진 왕보현 기자]
▲ 청와대 문이 활짝 열렸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74년 간 대통령 집무실 겸 관저로 사용된 청와대가 지난 10일 개방 후 다녀간 관람객 수가 40만을 넘어섰다. |
청와대의 문이 열렸다. 일찌감치 채비하고 관광길에 나선 촌로들을 싣고 온 관광버스들이 도로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일군의 시위대외에는 통행량 자체가 많지 않던 청와대 인근이 인파로 넘쳐난다. 서촌과 북촌 마을이 하루 종일 관광객으로 들썩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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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8년 이승만 전 대통령이 미군정사령관 관저로 사용되던 구 조선총독 관저를 이양받아 대통령 집무실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조선 시대의 지명에 따라 경무대(景武臺)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윤보선 전 대통령이 경무대 본관의 청기와 지붕에 착안하여 현재의 이름으로 개칭하였으며, 노태우 전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익숙한 현재의 본관을 신축하였다. |
▲ 청와대 문이 활짝 열렸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74년 간 대통령 집무실 겸 관저로 사용된 청와대를 방문한 관람객이 청와대 본관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서울의 새로운 명물 ‘청와대’에는 일본 총독의 관저가 있었다. 고려 시대 청와대 자리는 남경의 별궁 자리였고 조선 시대에는 경복궁의 후원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 제7대 조선총독인 미나미 지로가 1937년 공사를 시작해 1939년 완공해 관저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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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는 윤보선 전 대통령이 경무대(景武臺) 본관의 청기와 지붕에 착안하여 청와대로 명명했다. |
▲ 영빈관앞에 길게 줄지어 선 관람객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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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의 큰 연회가 열리던 영빈관 내부의 집기가 모두 치워졌지만 기념사진을 찍기에는 충분하다. |
▲ 본관앞에는 종일 관람객이 붐빈다 |
▲ “어머니 저 불로문에 들어갔다 나오세요. 건강하게 장수하셔야죠” 불로문을 드나들며 장수를 기원한다. |
시간이 지나며 청와대 곳곳은 사람으로 넘쳐난다. 구 본관(경무대)이 있던 수궁터로 향했다. 수궁터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돌로 만든 불로문(不老門)이 있다. 경기도 이천에서 8순의 어머니를 모시고 온 김홍식(43)씨는 “어머니 저 불로문에 들어갔다 나오세요. 건강하게 장수하셔야죠”하며 어머니를 재촉한다. 아들의 손에 이끌려 불로문을 드나드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기 좋다.
▲ 관저로 넘어가는 길목에 쉼터와 수궁(守宮)터가 있다. 경복궁을 지키던 병사들이 머물던 곳으로 이 일대를 경무대라고 불렀는데, 일제강점기 시 조선총독부가 전각을 허물고 총독관사를 지었다. 광복 후에는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하다가 지금의 청와대 본관을 지으면서 총독관사는 철거하고 표지석만 남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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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저는 본관과 마찬가지로 팔작지붕에 청기와를 얹은 전통 한옥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생활공간인 본채와 접견 행사 공간인 별채가 ‘ㄱ’자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
불로문을 지나 구 본관 앞 넓은 삼거리 공터에는 쉼터와 화장실이 있다. 청와대 경내에는 찻집이나 매점 등 편의시설이 없어 이곳에서 잠시 물을 마시며 쉬어 가는 것도 좋다. 옛 경무대 자리인 수궁터를 지나 낮은 언덕을 오르면 대통령 관저 출입문인 인수문이 보인다. 이 곳은 대통령의 사적인 공간이었다. 우리 고유의 전통 양식의 뜰과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인 청안당(청와대에서 편안한 곳)에서 역대 대통령들은 쉬기도 하고 나랏일로 노심초사한 곳이다. 오늘부터는 관저 내부도 유리창을 통해 볼 수 있다.
▲ 관저 뒤로 이어진 데크를 따라 언덕으로 올라가면 역사문화유산인 오운정과 경주 불상을 만나게 된다. |
관저를 나와 왼쪽 조그마한 연못을 건너면 산으로 오르는 산책로가 나온다. 약간 숨이 찰 정도로 5~6분 오르면 오색그림이 드리운 풍광의 ‘오운정’과 9세기경 통일신라시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불좌상 ‘미남불’이 있다. 이 불상은 원래 경주에 있었는데 일제가 1913년경 서울 남산의 왜성대 총독관저에 있다가 1930년 총독관저가 이 곳으로 이전하며 함께 옮겨진 것이다. 미남불 앞 작은 마당에서 푸른 기와 너머로 도심 빌딩숲과 남산 서울N타워가 한 눈에 들어온다.
▲ 보물로 지정된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 통일신라 전성기의 불교 양식을 보여주는 대표 유물로 자비로운 미소와 함께 생김새가 멋스러워 ‘미남불’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
▲ 관저 뒷편 산책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서울 도심이 한 눈에 펼쳐진다. |
다시 관저로 내려와 언덕 밑으로 향하니 관저 출입구 철문에 붙어있는 황금색 봉황 문장을 배경으로 관람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출입구에서 몇 미터 내려가면 바로 세 갈래 길이 나온다. 왼쪽이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인 침류각이 위치하고 바로 내려가면 대통령 기자회견과 출입기자들이 주재하며 취재하던 춘추관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향하면 국내외 귀빈을 맞아 의전행사를 했던 상춘재와 어린이날 행사 등이 열리던 녹지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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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춘재 아래 실개천에서 잠시 더위를 식히던 이한진(76·포천)씨는 “대통령의 정원에서 잠시지만 계곡물에 손을 담그고 아내와 물장난 치는 호사를 누린다”면서 “비록 국민들에게 이런 공간을 넘겨주고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겼지만 꼭 성공한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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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춘재는 외국 귀빈들을 맞이하는 의전 행사나 비공식 회의 장소로 사용된 한옥이다. 1983년에 200년 이상 된 춘양목을 사용해 개축한 전통 가옥이다. |
상춘재 가는 길 아래에는 아담한 연못과 실개천이 흐르고 쉴만한 정자도 있다. 정자 위편에 관저가 위치한다. 짙푸른 숲 아래 정자에서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 잠시 손도 담가보고 상춘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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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여 종의 나무가 심겨져 4계절 아름다운 녹지원은 어린이날 행사나 각종 야외행사 시 TV에도 자주 등장하던 곳이다. |
상춘재 아래 청와대 경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인 녹지원이 자리한다. 녹지원 맞은편에는 청와대 비서관들과 행정관들의 집무동인 위민관과 여민관 등이 있다. 대통령실 보좌진이 떠난 건물엔 셔터문이 내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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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지원 앞 도로가에 심어놓은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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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 경내에는 잘 가꾸어진 조경수와 침엽수, 활엽수, 관목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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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지원에는 120여종의 나무가 심겨져 있어 4계절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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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하남에서 온 박찬경 씨는 "운좋게 당첨이 돼서 아내와 딸, 손자와 나랏님 집 구경을 잘 했다. 이렇게 좋은 날씨처럼 나라 정치도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녹지원에서 내려와 좌측으로 향하면 온실과 춘추관이 보이고 넓은 잔디밭이 펼쳐진다. 녹색의 잔디 위에는 야외용 대형쿠션인 빈백과 삼각형의 차광막이 가지런히 놓여 특이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마치 한강공원의 텐트촌을 옮겨놓은 듯 한 풍경이다. 불과 보름 전까지 TV뉴스와 신문 기자들의 체취가 남아있는 이곳에서 관람객들은 잠시 휴식을 취한다. 어른들은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은 비눗방울을 날리기도 하며 마음껏 잔디밭을 뒹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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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관 앞 잔디밭에는 관람객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했다. 간이 텐트와 빈백이 놓여있는 이곳에 누우면 병풍처럼 이어진 북악산과 인왕산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
춘추관 앞 옛 청와대 헬기장에 마련된 쉼터에서 가족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던 권마음(58, 수원)씨는 “오늘처럼 화창한 날 잘 가꾸어진 청와대는 어떤 관광지 보다 매력적인 것 같다”면서, “사위 덕분에 멋진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가는 곳 마다 사진 찍기 바빴는데 잔디밭에 마련된 텐트촌에 앉아 쉬는 것도 멋진 그림이다. 활력 넘치는 특별한 가족사진 많이 남겼다”고 말한다.
▲ 청와대의 프레스센터인 '춘추관'은 대통령의 기자 회견 장소이자 출입 기자들이 상주하던 곳이다. 춘추관을 찾은 어린이가 마이크를 잡고 발표하는 모습을 엄마가 촬영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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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관 내부 홍보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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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관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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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 앞 분수대 관람을 마친 관광객과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하루 종일 붐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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