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만난 죽변항 대게잡이 어선 동승 취재

왕보현 기자 / 기사승인 : 2020-02-05 09:2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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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게잡이 어부 삶 체험
⁃ 20톤급 대게잡이 자망어선 동환호, 12시간 동행 취재-
⁃ 정월대보름 전후한 지금이 대게 제철

영화세트 같은 바닷가 하얀 등대에서 쏟아내는 불빛이 밤바다를 가르는 시간. 세상은 아직 한밤중 모두가 단잠에 빠져있는 새벽 3시가 되기 전 KoreaTourPress 취재진은 출항신고를 위해 동환호 김순명(70) 선주와 함께 해양경찰서 죽변파출소를 찾았다. 파출소 소장은 초면인 기자에게 “대게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면 배멀미가 심하다”면서 “‘멀미약은 먹었냐’며 김 선장에게 ‘배 좀 살살 모세요’”라면서 긴장을 풀어 준다.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항. 여기저기서 집어등을 밝히며 출항 준비에 분주하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뜨겁게 달아오르는 죽변항은 밤낮이 따로 없다. 대나무가 많은 바닷가 또는 ‘대숲의 끝 마을’이라 하여 죽변으로 불리는 죽변항은 경북 울진군 북단에 있는 어항이다. 동해안에 손꼽는 어로기지 중 하나인 죽변항은 대게와 오징어, 고등어, 꽁치 등 다양한 어종과 많은 어획량을 이야기하듯 항구에 맞닿아 크고 작은 수산물 가공 공장들이 줄지어 있다. 

▲ 울릉도에서 직선거리에 위치한 죽변항은 한때는 포경선들이 줄을 섰던 곳으로 동해안의 손꼽는 어로 기지다. 울진대게와 오징어, 정어리, 꽁치, 명태 잡이로도 이름난 항구이다.


동환호를 비롯 서너 척의 대게잡이 자망어선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방파제를 빠져 나간다.

‘끼룩끼룩’ 선잠을 깬 갈매기들이 뱃전을 날며 향도되어 동환호를 망망대해로 인도한다. 별빛마저 잠이든 어둠 속 검푸른 바다 위 어선은 한낱 조각배에 불과했다.
속도를 올리자 배는 상하좌우로 심하게 출렁이며 힘차게 파도를 가른다. 항구의 불빛이 서서히 멀어지면서 파도도 거칠어진다. 선장은 아직도 2시간은 더 가야 한다며 선실로 들어갈 것을 권한다.  

▲ 울진지역 대게자망어업인들은 수년 전부터 법적 대게 금어기가 해제되는 11월 1일을 자율적으로 1개월 늦춘 12월 1일부터 조업에 들어가는 등 어족자원 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렵게 중심을 잡으며 내려간 선실은 기관실에서 쏟아내는 엔진소리와 소금기 밴 기름 냄새가 역겨워 다시 갑판 위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겨울 바다의 매서운 찬바람이 오히려 시원했다.

얼마를 달렸을까 선장이 달리던 배를 멈추고 엔진 출력을 줄이자 5명의 베트남 선원들이 잠에서 깨어나 눈을 비비며 주섬주섬 작업복을 입는다.
드디어 대게잡이가 시작된 것이다. 

▲ 기계물레인 양망기가 대게가 걸려있는 그물을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동환호가 바닷속 400여m에 서른 세 틀(한틀의 그물길이는 360m)의 그물을 쳐 놓은 곳은 죽변항에서 10km가량 떨어진 왕돌초 지역이다. 해저산맥을 이루고 있는 이곳은 개흙이 없고 모래와 대게가 좋아하는 먹이인 해초가 풍부한 대게의 서식지다.

대게(Chionoecetes opilio)는 커다란(大) 게가 아니다. 다리 모양이 대나무처럼 길고 마디 졌다해서 '대게'라 부른다.

배의 앞부분인 선수에 서서 한참이나 밤바다를 살피던 선장은 어둠 속에서 무언가 발견하고 선원들에게 큰소리로 외친다. 바다 속 긴 그물의 시작을 알리는 동환호 고유번호 9번이 쓰여진 대형 부표를 발견한 것이다.


“빨리빨리 앞으로들 와” 김 선주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모두가 긴장한다.

출렁이고 미끄러운 갑판 위에서 커다란 부표를 건져 올리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경험많은 선원이 갈고리로 어렵게 부표를 끌어 올린다. 그물을 끌어 올리는 기계인 양망기에 어망의 줄을 연결한다. 수심 4~500m 아래에 드리워진 어망에 연결된 밧줄을 끌어 올리는데 족히 10분은 걸렸다. 김 선장은 갑판 한쪽에서 쉼 없이 올라오는 600여m의 밧줄을 차분하게 말고 있다. 마침내 컴컴한 바다 위로 그물망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김 선장을 비롯한 선원 모두가 기대 속에 대형 기계 물레인 양망기를 주목한다. 물레가 몇 바퀴나 돌았을까 기다리던 '겨울바다의 진객' 대게가 모습을 드러냈다. 양망기를 다루는 선원을 빼고 나머지 선원들은 뒤로 물러앉아 그물에 달려 올라오는 대게를 조심스럽게 떼어낸다. 생각보다 대게가 많이 나오지 않자 김 선장의 표정이 밝지 않다.

어족보호를 위해 체장 9cm가 넘지 않는 대게는 바로

바다로 보내진다. 


첫 번째 그물작업이 거의 끝날 무렵 선원 두 명은 선미로 가서 엉킨 그물을 풀어가면서 차곡차곡 그물을 쌓고 있다.

이후 10여 분간 이동한 동환호는 다시 기대 속에 두 번째 그물을 양망기에 걸었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분위기가 좋았다. 양망기의 속도를 조절하던 선원이 서툰 한국말로 ‘박달대게가 올라왔어요’라며 선원들에게 들어 보인다. 박달나무처럼 속이 꽉찬 황금빛의 박달대게는 일반대게에 비해 가격도 2~3배 비싸다.  

▲ 겨울 바다가 내준 귀한선물인 대게. ‘大게’가 아닌 다리마다 생김새가 대나무처럼 마디진 다리와 빛깔을 가졌다하여 대게란 이름이 붙었다. 지방질이 적어 담백하고 독특한 풍미를 지녔다.


냉수성 어종인 대게의 선도유지를 위해 바닷물과 비슷한 온도인 3도 전후에 맞춰진 파란색 수조에도 서서히 대게가 차기 시작했다. 수조 앞에서 대게 분류작업을 하는 김 선장의 등 뒤 엷은 구름 사이로 어느새 아침 해가 떠올랐다.

두 번째 그물 작업을 마친 후 이번에는 정리한 그물을 바닷속에 집어넣는 투망 작업이 시작됐다. 좁은 갑판 위에서의 모든 작업이 그렇지만 특히 투망 작업은 앞뒤, 옆 선원들 간의 호흡이 맞지 않거나 조금의 부주의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바다에 부표를 던지거나 조류에 그물이 떠내려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대형 망에 가득 넣은 돌무더기를 바다 속으로 밀어 넣는 작업은 경험이 많은 선임 선원이 주로 한다. 이때 혹이라도 줄에 발이 걸리면 그대로 바다에 빨려 들어간다. 이날도 투망작업 시 신입 선원이 줄 옆에 서 있다가 김 선장에게 호되게 질책을 받았다.


“너 한국에 돈 벌러와서 이렇게 고생하면서 물고기 밥이 되고 싶냐. 한 번 만 더 정신 안 차리면 집으로 돌려보낼 거야” 모두 다시 한번 긴장의 고삐를 죈다.

두 번째 투망 작업을 마칠 즈음 아침 해가 중천에 걸렸다.

드디어 선미에서 기다리던 대게파티가 벌어졌다. 아무리 조심해서 그물작업을 해도 집게발이 떨어져 상품성이 없는 대게는 그대로 끊는 물속으로 들어가 선원들의 허전한 배를 채운다.


김 선장은 기자에게 “그동안 내 배에 탄 기자, PD들 대부분 멀미했는데 왕 국장은 대단하시네”라며 “배에서 내릴 때 가져가지는 못해도 여기서는 한번 실컷 드셔보라며 족히 10여 마리는 넘어 보이는 큰 솥을 기자 앞에 내놓았다.” 게눈 감추듯 한 솥을 거뜬히 비웠다. 앞으로 대게는 안 먹어도 평생 이야깃거리는 생겼다.
아침 식사 후 순조롭게 3번째 그물작업과 투망작업 후 마지막 부표를 던지는 것으로 이날의 조업은 모두 끝이 났다.


귀항 길에 대게를 넉넉히 넣어 대게라면을 끓였지만 아침에 대게찜을 원 없이 먹어서인지 생각보다 대게라면은 남들이 이야기하듯 그리 충격적인 맛은 아니었다.

오후 3시가 지나 무사히 죽변항에 귀환했지만 선원들의 일과가 끝난 건 아니었다. 선원들은 해 떨어지기 전 찢어지거나 엉킨 그물을 손질하고 일부 선원은 다음 날 아침 경매에 들어갈 700여 마리 대게의 신선도 유지를 위해 배에 남아있는다.
베트남 중북부 하딩이 고향인 만드그(28) 선원은 “한국에 처음 와서 오징어 배를 타다가 동환호로 옮긴지 1년 반 됐다. 뱃일이 고되지만 열심히 돈을 모아 고향에 돌아가서 아내와 멋진 내 집을 짓는게 꿈”이라며 활짝웃는다.

 

▲ 지난 17일 오전 9시, 울진군 죽변항에서 죽변수협 경매사와 중매인들이 울진 앞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탐스런 대게를 둘러싸고 분주한 손길로 경매를 펼치고 있다.

이튿날 날이 밝자 아침부터 위판장에는 아침부터 활기가 넘친다. 대게 위판이 진행되는 것이다. 위판이 시작되면서 밤새 조업을 마친 어부들이 순서에 따라 진열을 마치자 경매사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리고 중매인들의 눈치싸움 수 대결이 열기를 돋군다.
각 수확물 사이를 오가며 진행되는 경매사의 노련함에 수많은 중매인들의 숫자에 따라 선주들과 선원들의 희비가 엇갈린다. 이날 경매의 가격은 대게 1마리 당 1만 5~6천원 선으로 평범하게 진행되었다.

대게뿐 아니라 부산물로 잡혀 올라온 물메기, 생대구, 왕소라 등도 함꼐 경매에 부쳐지고, 집게발이 탈락된 소위 B품도 한켠에서 경매를 통해 거래되었다.
낙찰 받은 대게들을 손수레에 싣고 중매인들이 흩어지자 위판장에는 다시 적막이 찾아오고 선원들은 늦은 아침 식사를 위해 뿔뿔이 흩어진다.

20톤급 대게잡이어선 동환호에 동승 취재중인 기자

한편 대게는 정월대보름 전후한 지금이 가장 맛있는 제철이다. 울진 등 대게 산지에서는 매년 이맘때 대게축제를 시행한다. 그러나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대부분 지자체가 축제 진행을 취소하거나 연기했다.

[코리아 투어 프레스=왕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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