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식 도자기에 담긴 조선 왕실 '근대국가의 꿈’

왕보현 기자 / 기사승인 : 2020-07-29 00: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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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왕실에서 사용한 서양식 도자기 특별전
- 조선과 프랑스 수교기념 ‘살라미나 병’ 등 최초 공개
- 다량의 일본 자포니즘 화병 국내외 처음 선보여

[티티씨뉴스=왕보현 기자]

개항기 조선왕실에서 사용한 서양식 도자기 특별전이 29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렸다.

개항 전후 조선왕실의 도자기 변화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특별전 「新신왕실도자, 조선왕실에서 사용한 서양식 도자기」전이 29일부터 10월 4일까지 종로구 효자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다.

▲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신(新)왕실도자' 전시 개막후 정재숙 문화재청장이 백자 채색 살라미나(Salamis) 병을 보고 있다. 29일부터 10월 4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개항 전후 조선왕실에서 사용한 서양식 도자기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선과 프랑스 수교(1886)를 기념하여 프랑스 사디 카르노 대통령이 고종에게 보낸 ‘살라미나 병’과 필리뷔트(Pillivuyt) 양식기 한 벌, ‘백자 색회 고사인물무늬 화병’ 등 그동안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근대 서양식 도자기 40여 점이 처음으로 전시되며, 이를 포함해 프랑스·영국·독일·일본·중국에서 만들어진 서양식 도자기 등 약 310건 400점의 소장 유물이 한자리에서 선보인다.


도자기는 사용하는 시대와 사람에 따라 기능과 형식이 크게 달라지는 실용기로, 당대 사회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국내 최대 근대 도자기 소장 기관으로, 이번 특별전은 개항 이후 근대국가로 나아가고자 노력했던 조선의 생생한 이야기를 ‘왕실에서 사용한 서양식 도자기’를 통해 5부의 전시로 조명하고자 기획되었다.
▲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신(新)왕실도자' 전 개막식 참석자들이 19-20세기 일본 규슈 아리타에서 만든 장식 화병을 보고 있다. 29일부터 10월 4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개항 전후 조선왕실에서 사용한 서양식 도자기들을 만나볼 수 있다.

□ 개항 전후 왕실 도자기 변화의 서막
1부 ‘조선후기 왕실의 도자 소비’에서는 용준(龍樽)과 모란무늬 청화백자, 정조초장지, 화협옹주묘 출토 명기 등 조선왕실 청화백자를 한곳에 모아 전시한다. 서양식 도자기를 본격적으로 감상하기에 앞서 500년간 이어진 왕실의 전통 도자기를 우선 감상하는 공간을 마련해 왕실 도자기의 소비 변화를 알아볼 수 있게 하는 취지다.
용준(龍樽)은 용무늬가 그려져 있는 큰 백자 항아리를 말하며 각종 왕실행사에서 술단지나 꽃병으로 사용되었다.
백자 공작새 꽃무늬 화병 白磁粉彩孔雀花卉文甁 White Porcelain Vasewith Peacock and Flowering Plant Design(중국, 19-20세기) 중국 징더전 민간 가마에서 페라나칸을 주소비층으로 제작한 화병이다. 페라나칸은 싱가포르, 말레이반도 등지에 살던 중국 상인의 후손으로, 중국의 전통을 지키며 새로운 생활에 맞춘 도자기를


주문하였다. 봉황과 모란, 옅은 녹색과 분홍색을 주조로 하는 색감은 페라나칸 자기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봉황과 같은 상상의 새를 시작으로 공작, 까치, 물총새 등 갖가지 새를 암수 한 쌍으로 표현하고 연꽃, 모란, 매화, 국화 등의 꽃을 화면 가득 배치했는데 이들은 자손의 번창을 상징한다.(사진=국립고궁박물관 제공)


2부 ‘新신왕실도자 수용 배경’에서는 개항 이후 서양식 도자기가 왕실에 유입되었던 배경을 조선의 대내외적 변화로 살펴본다. 조선은 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 이후 근대국가로 거듭나기 위해 서양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오얏꽃무늬 유리 전등갓> 등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150여 점의 유리 등갓은 1887년 전기 도입 후 궁중 실내외에 설치된 것이다.
홍색 오얏꽃무늬 유리 등갓 紅色李花紋玻璃燈罩 1883년(고종 20) 미국을 방문한 보빙사 일행은 밤거리를 환하게 밝힌 전등을 보고, 조선 내 전등 설비 도입을 제안하였고, 1887년(고종 24) 경복궁 후원의 건청궁(乾淸宮)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전등이 불을 밝히게 된다. 궁궐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에도 전기 시설이 갖춰지면서 밤까지 활동 시간이 연장되어 왕실의 생활양식이 변화하게 되었다.(사진=국립고궁박물관 제공)
관람객들은 근대기 빛(Light)의 시대로 진입했음을 암시하는 연출공간에서 가지각색의 유리 전등갓을 비교해보고 유리 등갓으로 만든 문을 통과해 본격적으로 서양식 도자기를 감상할 수 있다.

□ 조·불 수교 기념 프랑스 대통령 선물 ‘백자 채색 살라미나 병’ 최초 공개
3부 ‘조선과 프랑스의 도자기 예물’에서는 조·불수호조약(1886) 체결 기념으로 프랑스 사디 카르노(Marie François Sadi Carnot, 재임 1887-1894) 대통령이 조선에 선물한 프랑스 세브르 도자제작소(Manufacture Nationale de Sèvres)에서 만든 <백자 채색 살라미나Salamine 병>을 처음 선보인다.
백자 채색 살라미나(Salamis) 병 白磁彩色花文甁 프랑스 세브르(Sèvres), 1878년, 국립세브르도자제작소 프랑스 국립세브르도자제작소에서 제작한 대형 장식용 병이다. 1888년 프랑스의 마리 프랑수아 사디카르노Marie François Sadi Carnot(1837.8.11.-1894.6.25.) 대통령이 고종에게 보낸 수교예물로 추정된다. 국립세브르도자제작소의 1888년 8월 출고 기록을 보면 클로디옹 병Vase Clodion 두 점과 함께 살라미나 병Vase de Salamine 한 점이 한국의 왕에게 보내졌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병의 내부에는 녹색 마크 “S.78”와 붉은 마크 “DECORE A SEVRES”, “RF”, “78”이 남아 있다. S는 세브르Sèvres를, 78은 1878년에 제작되었음을 의미하며, RF는 ‘République Française’, 즉 프랑스 공화국의 약자이다.(사진=국립고궁박물관 제공)
개항 이후 조선은 수교를 맺은 서양 국가로부터 기념 선물을 받은 전례가 없었다. 예술적 자부심이 높은 프랑스는 자국을 대표하는 명품으로 세브르産(산) 도자기를 선택해서 보냈다. 고종은 답례로 12~13세기 고려청자 두 점과 ‘반화(盤花)’ 한 쌍을 선물하였다. 반화는 금속제 화분에 금칠한 나무를 세우고, 각종 보석으로 만든 꽃과 잎을 달아놓은 장식품을 이른다.

4부 ‘서양식 연회와 양식기’에서는 조선왕실의 서양식 연회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 개항 이후 조선은 서양식 연회를 개최해 각국 외교관들과 교류하고 국제정보를 입수하고자 했다.
조선왕실에서 사용한 서양식 식기食器 Western-style Tableware of Joseon Court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수입 식기 중 만찬을 위해 구매한 것으로 보이는 프랑스 필리뷔트Pillivuyt의 식기세트는 백자에 금색 선을 두르고 조선왕실을 상징하는 이화문李花文을 장식하였다. 현재 모든 구성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코스별로 4~6인분의 음식을 한 번에 차려 놓고 각자 음식을 덜어 먹는 프랑스식 만찬을 위한 식기 세트였던 것으로 보인다.(사진=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창덕궁 대조전 권역에 남아 있는 서양식 주방을 그대로 옮긴 구조에 <철제 제과틀>, <사모바르(Samovar)> 등 각종 조리용 유물을 전시해 당대의 창덕궁 주방 속으로 관람객을 안내하는 공간이다. 이화문(李花文)이 찍혀있는 프랑스 회사 필리뷔트(Pillivuyt) 양식기는 조선에서 주문 제작한 도자기다. 푸아그라 파테, 안심 송로버섯구이, 꿩가슴살 포도 요리 등 정통 프랑스식으로 이루어진 12가지의 서양식 정찬이 필리뷔트 양식기에 담기는 영상도 전시실에서 함께 어우러져 마치 연회 속에 직접 와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사모바르는 장작, 석탄 등을 사용하여 물을 끓였던 러시아식 주전자를 말한다.

□ 다량의 일본 자포니즘 화병 국내외 처음 선보여
▲ 백자 색회 고사인물무늬 화병 白磁色會故事人物文甁 일본, 19-20세기, 고란샤[香蘭社] 규슈 아리타의 고란샤에서 만든 장식 화병이다. 중앙에 창을 낸 뒤 중국의 죽림칠현 竹林七賢을 표현하였다. 중앙의 문양 창을 용이 잡고있는 것처럼 독특하게 표현하였는데 이 용 역시 고란샤의 다른 항아리처럼 수묵화 풍으로 그렸다. 구름 속의 용은 일본에서 창호 등에 자주 사용되었던 주제이며 고란샤의 주요 도안 중 하나이다. 바닥에 청화로 그린 난과 후카가와가 제작했다는 ‘深川製’라는 명문이 있는데 고란샤의 마크이다.(사진=국립고궁박물관 제공)
5부 ‘궁중을 장식한 수입 화병’에서는 만국박람회를 통해 세계 자기 문화의 주류로 떠오른 자포니즘(Japonism) 화병과 중국 페라나칸(Peranakan) 법랑 화병을 전시한다. 자포니즘(Japonism)은 19세기 중반 이후 서양에서 나타난 일본 문화 선호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페라나칸(Peranakan)은 19세기 후반부터 말레이 반도, 싱가포르 등지에 사는 중국 무역상의 후손을 이른다.조선이 서양식 건축을 짓고 세계적으로 유행한 대형 화병을 장식한 것은 근대적 취향과 문물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의 하나였다. 일본 아리타·교토·나고야 지역에서 제작하여 세계적으로 유행한 서양 수출용 화병들이 국내에 이처럼 다량 현존하고 있는 사실은 국내외에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고란샤(香蘭社)·긴코잔(錦光山)과 같은 공장제 도자기 제작회사에서 만들어진 이 화병들은 새와 꽃, 용, 고사인물 등 다양한 소재와 금채金彩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풍부한 볼거리를 담고 있다. 고사인물(高士人物)은 주요 회화 소재 중 하나로 신화나 특정 주제에 얽힌 인물을 지칭한다.

한편,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은 조선왕실 문화를 연구, 전시하는 전문 박물관으로서 2018년 ‘조선왕실 아기씨의 탄생’ 특별전 등을 비롯하여 조선왕실의 도자기를 조명하는 전시를 꾸준히 개최해 왔다.


김동영 국립고궁박물관장은 “이번 특별전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복잡한 세계정세 속에서 이룩해야 할 자강(自强)의 의미를 모색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며, “아울러 코로나19로 인해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하여 일상의 활력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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