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회적 죽음…진상규명하라”

왕보현 기자 / 기사승인 : 2021-07-07 23:3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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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으러 출근하지 않았다” 서울대 청소노동자 남편 호소
- "건물명 한자로 써라" 서울대 청소노동자에 갑질
-“군대식 검열로 모욕감 줘”

[티티씨뉴스=왕보현 기자]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였던 이 모(59·여)씨가 사망했다.  

▲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는 7일 오후 12시 서울 관악구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청소노동자 이모 조합원 사망 관련 서울대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모씨의 남편이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유족과 노동조합 측은 업무와 상관없는 시설물 준공년도를 외워 시험을 보게 하는 등 심각한 '직장 갑질'에 시달린 것이 사망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과 유족은 7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행정관 앞에서 청소노동자 이 모씨 사망과 관련해 오세정 서울대 총장을 규탄하고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원들이 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에서 열린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관련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 모씨는 지난달 26일 서울대 기숙사 청소노동자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모씨는 당일 평상시처럼 오전 8시 일터인 서울대 925동 여학생 기숙사로 출근했다. 10시 50분경 휴게실에서 만난 926동 담당 허OO 조합원은 당일 이 모씨는 “별 말은 없었으나, 힘들고 얼굴이 많이 지쳐 보였고, 계속 멍해 있었다”고 전했다. 11시 18분 경 이 모씨와 통화 한 또 다른 여성 조합원은 “말투는 평소와 유사했고, 특이사항 못 느꼈다”고 했다.

 

이날 11시 48분경 이 모씨는 딸에게 전화해서 “오후 2시 경 귀가 할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귀가가 늦어지고 오후 10시까지 연락이 닿지 않자 가족들은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이날 23시경 휴게실에서 잠들어 있는 듯 한 모습으로 발견됐다.
▲ 서울대 기숙사 청소 노동자 50대 여성 이모씨가 지난달 27일 숨진 채 발견됐다. 서울대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은 “이씨가 서울대 측의 군대식 업무지시와 과도한 노동 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고 주장했다.

이 모씨의 남편(60)은 티티씨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우리 가족에게는 일어나리라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 일어났다”며 “너무 기가 막힌다. 아직까지도 이게 현실인지 구분이 어렵다. 특히 엄마의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 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든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 모씨는 지난 2019년 11월부터 서울대학교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했다.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로 채용되기 위해서는 ‘국민체력100’이라는 인증기준을 넘어야 한다. 20m 왕복 달리기, 오래달리기, 교차윗몸일으키기 등 여러 항목을 문제없이 통과했다. 이 모씨는 병치레를 한 적 없는 ‘건강체질’이었다. 지난 2015년 NGO 해외봉사단으로 파견되기 전 받은 정밀검사에서도 문제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는 7일 오후 12시 서울 관악구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청소노동자 이모 조합원 사망 관련 서울대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모씨의 남편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자살이나 타살 혐의점은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유족과 노조 측은 이 모씨가 고된 노동과 서울대 측의 갑질에 시달리면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고 주장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 모씨의 남편은 “아내가 하늘나라로 간 지 10일이 지났는데 아직도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라며, “해외에서 비정부기구(NGO) 활동을 하다가 귀국해 막막했을 때 정부의 구직자 프로그램을 통해 2019년 서울대에 취업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 서울대 기숙사 청소 노동자 50대 여성 이모씨가 지난달 27일 숨진 채 발견됐다. ‘청소노동자 이모 조합원 사망 관련 서울대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장에서 이 씨의 동료 근로자들이 사용자측의 직장내 갑질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이씨는 "이제는 월세 걱정 없이 아이들을 공부 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저희 부부는 너무 기쁘고 행복했지만 지난해 시작된 코로나-19로 학생들의 배달음식 주문이 늘면서 쓰레기의 양도 늘었다”며, "일이 많아져 1년6개월 동안 고된 시간을 보냈지만 학교는 어떤 조치도 없이 군대식으로 노동자들을 관리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발언 내내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흐느낀 이 씨의 남편은 “아내를, 엄마를 이 땅에서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제 아내의 동료들이 이런 기막힌 환경에서 계속 일을 해야 한다면, ‘출근하는 가족의 뒷모습이 마지막이 돼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라며, “이번 일로 어느 누구도 퇴직당하는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 학교는 근로자들의 건강을 챙기고 노사 협력으로 대우받는 직장이 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호소했다.
▲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과 관련해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직장 갑질'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노조 측은 “고인은 돌아가시기 전 서울대 측으로부터 부당한 갑질과 군대식 업무 지시, 힘든 노동 강도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이 모씨가 근무했던 여학생 기숙사는 건물이 크고 학생 수가 많아 여학생 기숙사 중 일이 가장 많았다”고 했다.

노조 측은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 쓰레기양이 증가해 이 모씨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기숙사에서 대형 100L 쓰레기봉투를 매일 6~7개씩 직접 날라야 했다”라며 “특히 유리병 같은 경우 무게가 많이 나가고 깨질 염려가 있어 항상 손이 저릴 정도의 노동 강도에 시달려야 했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학생 이재형 씨(‘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대표)가 “이번 산재 사망을 마주하며 2019년 공대 청소노동자 사망 2년이 다 돼가는 지금 서울대 현실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생각에 참담하다”는 연대사를 하고 있다. 

이재형씨는 “군대식 검열과 노동통제로 기강을 잡겠다는 모습을 통해 서울대는 여전히 노동자를 비용 절감 대상으로 본다. 이런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죽음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라며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으로 일상을 유지했던 학생으로서 부끄럽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런 노동 강도 속에서 노동자들의 근무 질서를 잡는다는 명분으로 군대식 업무 지시와 함께 청소노동자들이 회의에 펜이나 수첩을 안 가져오면 감점하겠다고 협박했다”며 “또 학교 시설물의 이름을 한자나 영문으로 쓰게 하는 등 불필요한 시험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모욕감을 줬다”고 덧붙였다.

노조 측은 “서울대는 이 모씨 사망에 책임이 없다는 듯 먼저 선을 그으면서 아무런 입장조차 밝히지 않고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며 “이 모씨 죽음은 저임금 청소노동자들이 처한 사회적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비극”이라고 말했다.
▲ 오세정 서울대 총장에게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청소 노동자들이 행정관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직장 내 갑질을 자행하는 관리자들을 묵인하고 비호하는 서울대는 이 모씨 유족에게 공식 사과와 함께 특단의 조치를 마련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철저한 진상 규명과 예방 대책이 마련돼야 서울대에서 산재 사고로 죽어가는 청소노동자들을 구할 수 있다”고 했다.
▲ 사망한 서울대 청소노동자 이 모씨가 근무하던 여학생 기숙사 내 휴게실 모습

이날 노조는 청소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 오세정 총장을 규탄한다며 진상 규명 위한 산재 공동 조사단 구성, 강압적인 군대식 인사 관리 방식 개선, 노동환경 개선과 재발방지 대책 위한 협의체 구성 등을 요구했다.
▲ 사망한 서울대 청소노동자 이 모씨가 근무하던 여학생 기숙사 내 직원 휴게실에는 맨바닥에 매트가 깔려 있고  세면도구와 식기, 프라이팬, 전열기가 있었다.


한편, 노조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오세정 서울대 총장실에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행정관으로 들어갔다. 이후 이 모씨가 실제 근무했던 925동 기숙사 건물을 찾아 휴게실 내부의 모습을 직접 살폈다.

▲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는 7일 오후 12시 서울 관악구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청소노동자 이모 조합원 사망 관련 서울대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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