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파책박물관, 교과서 특별전
- 한국 교육의 발자취 재조명
- 다양한 세대의 추억과 삶을 통해 소통
[티티씨뉴스=왕보현 기자]
“교육은 실로 국가를 보존하는 근본이다. 교육은 그 길이 있는 것이니 헛된 이름과 실용을 먼저 분별하여야 한다. 독서나 습자로 옛사람의 찌꺼기를 줍기에 몰두하여 시세의 대국에 눈 어두운 자는, 비록 그 문장이 고금을 능가할지라도 쓸모없는 서생에 지나지 못하다. 이제 짐은 정부에 명하여 학교를 널리 세우고 인재를 양성하여 그대들 신민의 학식으로써 국가 중흥의 대공을 세우게 하려 한다. 왕실의 안전이 너희들 신민의 교육에 있고, 국가의 부강도 또한 신민의 교육에 있다”
1895년 2월 2일 고종황제는 교육입국조서를 통해 이와 같이 밝혔다.
 |
▲ 송파구는 지난 3월9일부터 8월31일까지 송파책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조선말부터 현재까지 교과서와 사진, 영상 등 자료 150여 점을 통해 한국교육 130년의 발자취를 되짚어보는 ‘교과서, 우리들의 이야기(부제: 한국 교육 130년의 나침반)’ 기획전을 열고 있다. |
이렇게 시작한 우리의 근대교육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왜곡되고, 한국전쟁의 시기 고난의 길을 지나며 성장하고 자리를 잡아 오늘 세계 10위 부국의 기틀을 잡았다.
교과서는 국가적인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열과 함께 발전하며,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고 교육의 방향성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되어왔다.
교과서에는 학교 교육을 위한 내용 외에도 시대적 상황과 미래의 희망을 담은 청사진이 담겨있다. 학생들이 꿈을 키우며 성장할 수 있게 하는 지식과 학창 시절 추억이 깃든 이야기가 들어있다.
교과서를 통해 근대교육 130년의 발자취를 돌아보면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변화하는 교육의 모습을 추억하고 나눌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
▲ 송파책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교과서, 우리들의 이야기(부제: 한국 교육 130년의 나침반)」가 지난 9일부터 8월 31일까지 열리고 있다. |
서울 송파구 송파책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교과서, 우리들의 이야기(부제: 한국 교육 130년의 나침반)」가 지난 9일부터 8월 31일까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조선말부터 현재까지의 교과서와 사진, 영상 등 자료 150여 점을 통해 한국교육 130년의 발자취를 되짚어본다.
취재진을 안내한 김예주 학예연구사는 “한국 교육 흐름을 시대별로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라며, “이번 전시는 3대가 함께 공감할 수 있다. 조부모 세대의 어려웠던 기억들이 전시물을 통해 미래 세대들에게 자연스럽게 전해지는 좋은 교육 체험의 장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 서울 송파구 가락동 송파책박물관에서 열린 '교과서, 우리들의 이야기' 기획특별전을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품을 둘러보고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
1부(조선 말-대한제국 1895-1910) ‘근대 교육, 싹트다’에서는 개항이후 근대 교육에 대한 조선인들의 열망을 만날 수 있다. 1895년 2월 2일 고종황제는 교육입국조서를 통해 교육에 대한 개혁을 실시한다. 교육의 삼대 강령으로 지(智).덕(德).체(體)를 제시하고, 학교를 세우고 인재를 양성해 국가중흥을 이루고자 했다. 최초의 근대 국정교과서인 국민소학독본이 발행되고 소학독본 만국지지등이 편찬되었다. 초기 근대학교 모습과 함께 서양사 교과서인 <태서신사>와 지리 교과서인 <대한지지> 등을 만날 수 있다. 칼러 채색된 유럽지도인 구라파주 지도와, 현대적 경.위도선이 표기된 우리나라 최초의 전도로 추정되는 <대한전도>도 만날 수 있다.
 |
▲ 1899년 학부에서 발행한 소학교 역사교과서 '보통교과 동국역사' |
2부(일제강점기 1910-1945) ‘민족 교육의 수난’에서는 우리말은 <조선어독본>으로, 일본어는 <국어독본>으로 교육했던 모습과 실업교육에 치중했던 시대상황을 보여준다. 또, 우리나라 최초 우리말 교재 녹음자료인 <조선어독본,1935>도 직접 들어 볼 수 있다.
 |
▲ 일제강점기 조선인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한한 일제의 교육 정책에 맞서 전국에서 '서당 열풍'현상이 일어났다. |
녹음을 직접 들어 본 관람객 이우석(57, 경기 성남)씨는 “100년 전 발음이 지금과는 많이 다른 듯하다. 요즘 젊은이들은 우리말을 영어문법에 맞춰서 말하는 것 같은데 이번 전시를 보면서 교육의 중요성을 느낀다”고 말했다.

일제는 식민지 교육을 위해 조선 교육령을 개정하고, 실업교육에 치중했다. 특히 민족혼 말살을 위해 일본어 교육을 강요하고, 조선어와 조선의 역사 등 민족 교육을 억압했다. 이러한 억압의 반발로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인 서당 교육 열풍이 일어나기도 했다
 |
▲ 1950년 6.25 전쟁 중, 학생들은 폐허 속에서도 공부하고 있다.(ⓒ UN Photo Library, 송파책박물관 제공) |
3부(교수요목기 1945-1954) ‘폐허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은 광복 이후 우리말과 정신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던 교육열정을 교과서와 인터뷰 영상을 통해 소개한다.
 |
▲ 1950년 6.25 전쟁 중, 학생들은 폐허 속에서도 공부하고 있다.(ⓒ UN Photo Library, 송파책박물관 제공) |
정부 수립 후 최초 국민학교 국어 교과서인 <바둑이와 철수(국어 1-1)>와 1946년 간행된 <국사교본>등을 만날 수 있다. 광복이후 일제의 잔재를 지우기 위한 우리말과 우리 정신을 되찾기 위해 국어와 국사교육이 중점적으로 진행되었다. 조선어학회에서 한글교과서를 편찬 하는 등 새로운 교육을 펼치고자 했지만 바로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전쟁 중에도 교육자들은 수업이 가능한 곳이라면 어디서든지 학교를 열고 교육을 쉬지 않았다.
 |
▲ 1952년 서울 영등포 남부고등학교 여학생들이 부서진 학교 건물을 보수하고 있다.(ⓒ UN Photo Library, 송파책박물관 제공) |
강한수 장학회 회장인 강상병(1936년생, 86세)은 영상을 통해 “이 시기에는 물자가 매우 귀했기 때문에 노트가 없었다.”며, “시골 장날에 큰 백로지 한 장을 사서 32장으로 접어, 이걸 실로 꿰매서 노트를 만들었다. 노트의 표지는 비료포대로 만들었다. 당일 학교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을 집에 돌아와 등잔불 밑에서 꼼꼼하게 정리했는데 시험볼 때 문제에 숫자만 바꿔 나와 이 노트만 보면 시험을 잘 볼 수 있었다. 친구들이 시험기간에 많이 빌려갔다”고 회고했다.
 |
▲ 강상병 씨가 1951년 사용한 수학 공책 |
“굶주림과 질병으로 수천의 생명이 희생된 엄동설한에도, 한국 정부와 유엔은 다수 학생의 학업을 계속 시키는 방법을 발견했다. 지금 초등학교 학령 아동의 대부분은 정규 수업을 받고 있다. …(중략) 교과서의 부족은 중대한 문제다. 그러나 어느 시골에 가도 나무 밑에 학생들이 모여 앉아서 나뭇가지에 흑판을 걸고 떨어진 책을 나누어 보고 있다. 누더기를 입은 선생이 머리 위에 있는 나뭇가지를 꺽어서 만든 교편으로 가르칠 때, 6명 내지 8명의 학생들이 책 한 권을 나누어 보며, 암송하기 위하여 그 책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는 광경을 많이 볼 수 있다”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 1951.6.8.
 |
▲ 1950년 6.25 전쟁 중, 학생들은 폐허 속에서도 공부하고 있다.(ⓒ UN Photo Library, 송파책박물관 제공) |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 폐허 속 학교의 수업모습을 보도한 외신이다. 그 시절 “남한의 어디를 가든지, 정거장에서, 약탈당한 건물 안에서, 천막 속에서, 그리고 묘지 부근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고 외신은 기사를 이어갔다.
 |
▲ 1956년 천막학교에서 공부하는 어린이 (ⓒWim Dussel,Collectie IISG 송파책박물관 제공) |
4부(제1-2차 교육과정 1954-1973) ‘개천에서 용 난다’에서는 전쟁으로 파괴된 교육기관을 복구하고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마련했다. 1954년 제1차 교육과정을 제정했는데, 이는 우리 스스로 만든 최초의 체계적인 교육과정이었다. 이후 어려운 환경에서도 명문중고·학교 입학을 위한 치열한 입시경쟁, 아이들 성장을 방해했던 무거운 책가방 등 당시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교육열은 많은 교과서가 필요했고 전후 원조에 의지하던 우리 경제에서 겪는 용지난으로 교과서 가격이 폭등해 학부모의 허리가 휠 정도였다. 한쪽 벽면에 전시된 5알 주판 등 교보재가 전시되었고, 소위 ‘뺑뺑이’로 기억되는 ‘중학교 무시험 추첨기’ 실물이 전시 되었다.
 |
▲ 이번 특별전은 교과서와 함께 살아온 우리들의 이야기들은 생활과 추억을 통해 다양한 세대가 소통할 수 있는 전시이다. |
이어지는 ‘슬기로운 방학 생활’에서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방학 학습장이 전시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하휴학습장’, ‘동휴학습장’이라는 명칭의 방학학습장이 만들어 졌다. 1947년 대한교육연합회에서 방학학습장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그 후 ‘여름공부’, ‘방학공부’, ‘방학생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발간되다 1979년 이후에는 ‘탐구생활’로 발행되고 있다. 방학책 첫 장에 나오는 ‘방학생할 기록부’를 본 기자는 밀린 방학 숙제를 몰아하면서 개학 전날 밤 방학기간 날씨를 알길 없어 빈칸으로 쓰고 엉터리도 쓰고 했던 옛 기억이 스쳐지나간다.
 |
▲ 1970년대 중학교 입학 당시 사용되었던 무시험 추첨기를 관람객이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소위 '뺑뺑이'로 불렸던 무시험 추첨기를 학생들이 직접 돌려 자신이 갈 학교를 배정받았다. 오른쪽으로 두 번, 왼쪽으로 한 번 돌려 나온 은행알의 기호와 색상에 따라 학교가 정해졌다. |
5부(제3-4차 교육과정 1973-1987) ‘국가의 발전은 교육으로부터’는 국민교육헌장과 반공·도덕 교육 강화, 과외 과열화 현상 등 당시의 시대상을 소개한다.
교과서의 첫 장에 수록된 ‘국민교육헌장’을 한자도 틀림없이 외우기 위해 밤늦도록 읽고 또 읽으며 암송했던 시절이다.
 |
▲ 전시 중인 책가방과 교과서, 도시락 |
6부(제5-6차 교육 과정 1987-1997) ‘21세기를 그리다’는 1교과 다 교과서 체제가 도입되 <말하기·듣기> <읽기>, <쓰기>, <수학익힘책>등 한 과목을 여러 교과서로 분리했다. 1992년 이뤄진 6차 교육과정에서는 21세기를 주도할 세대들을 위한 교육이 강조되었다. 대학입학 학력고사는 1993년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바뀌었다. 1996년에는 초등학교의 명칭이 초등학교로 바뀌었다. 초등학교에 영어 수업이 시작되고 컴퓨터 교육도 시작하는 등 교과서를 통해 교육의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
▲ 김예주 학예연구사가 현장 학습을 나온 어린이들에게 옛 문구점 및 학용품 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
전시장을 둘러보는 내내 새 학기, 새 교과서를 받았을 때의 설렘이 기억난다. 봄방학 내 달력 종이를 크기에 맞게 잘라 교과서 표지를 싸고 이름을 적는다. 교과서를 보며 즐거웠던 학창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 교과서에는 학교 교육을 위한 내용뿐 아니라 시대적 상황과 미래의 희망을 담은 청사진이다. 학생들의 꿈을 키우며 성장할 수 있는 지식과 추억 깃든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우리나라의 교과서는 국가적인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열과 함께 발전하며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고 교육의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었다.
교과서와 함께 살아온 우리들의 이야기들은 생활과 추억을 통해 다양한 세대가 소통할 수 있는 전시이다.

이번 전시는 네이버 오디오클립을 통해 전시 해설을 무료로 공개한다. 전시 해설 녹음에는 한국사 스타강사 ‘큰별쌤’ 최태성이 참여해 더욱 눈길을 끈다. 관람시간은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관람료는 무료이다. 월요일은 휴관이다.
한편, 2019년 4월 개관한 송파책박물관은 책을 주제로 한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박물관이다. 연면적 6,211㎡(약 1815평)에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의 건물은 책장 속에 꽂혀 있는 책들을 형상화했다.
 |
▲ 송파책박물관에는 어린이들이 다양한 책문화를 즐기며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
1층에는 어린이가 다양한 책문화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체험 전시공간 ‘북키움’과 어린이 대상 체험형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공간인 ‘키즈스튜디오’가 자리잡았다.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중앙계단은 어울림홀로 곳곳에 비치된 만 여권의 책을 친구 또는 가족과 함께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고 강연 등 복합문화공간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
2층에는 상설전시실과 디지털 콘텐츠를 자유롭게 읽고 감상할 수 있는 미디어라이브러리, 야외정원 등이 조성되어 있다.
 |
▲ 한쪽 벽을 투명한 유리로 마감하여 관람객이 직접 수장고의 현황을 살필 수 있는 ‘보이는 수장고’가 지하1층에 있다. |
지하1층에는 한쪽 벽을 투명한 유리로 마감한‘보이는 수장고’가 자리 잡았다. 국조보감 등의 고서와 1950년대 발행된 점자성경책과 같은 근현대 귀중 자료, 목가구 등 책문화를 대표하는 소장품이 박물관에서 어떻게 관리·보존되고 있는지 직접 볼 수 있다.
송파책박물관에서는 책 관련 교육을 받을 수도 있다. 어린이 대상 교육, 청소년 대상 진로체험, 성인 대상 강연 등이 준비되어 있다.
송파책박물관은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으로, 어린이를 비롯한 모든 시민들이 책 문화를 향유하고 과거와 오늘의 지혜를 모아 미래를 그려가는 곳이다.
[저작권자ⓒ 티티씨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