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② 한가한 한가위 고향마을은?

왕보현 기자 / 기사승인 : 2021-09-16 23: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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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 울음소리 그친 고향마을 소멸위기
- 방앗간에는 할머니들 옹기종기
- 벌초대행 서비스 크게 늘어, 새로운 추석 풍속도

[티티씨뉴스 경북 청도·군위·상주=왕보현 기자]

▲ 경북 군위군 부계면 한밤마을의 한 농가에서 할머니가 가을하늘 아래 여유롭게 고추를 다듬고 있다.

한가위 명절을 일주일 앞둔 지난 주말, 경북 청도, 군위, 상주 등 고향마을을 찾아 나섰다. 가을의 수확을 준비하는 벌판의 나락은 고개를 숙이고 가을 햇볕에 풍성하게 익어가고, 한여름 폭염을 이겨낸 빨간 고추는 마당에 가득 펼쳐져 가을볕을 받고 있다.
과수원에는 햇과일들이 수확되고 있고, 감나무에 달린 감도 익어간다. 예년 같으면 부모 찾아 귀향하는 아들, 딸, 손자, 며느리 맞느라 분주해야 할 고향마을에 쓸쓸함이 감돈다. 취재진이 찾은 어느 마을에서도 한가위 명절을 앞둔 고향 분위기는 찾을 수 없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비대면 한가위’가 되면서 고향의 부모나 멀리 떨어져 사는 자식들이나 모두 섭섭한 명절이 될 전망이다.
고향마을 뿐 아니라 예년 같으면 한참 북적일 읍내 시장과 장터도 썰렁하기는 매한가지다. 그나마 고향을 방문하거나 내려오지 못하는 자식들에게 나눠 줄 참기름을 짜고 고춧가루를 빻기 위해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는 방앗간에서 명절의 작은 조각을 찾을 수 있다. 

▲ 지난 10일 청도군 유천마을의 한 방앗간에 할머니들이 고추가루와 참기름을 만들기위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 어르신들은 백신 접종을 마쳤지만 그래도 선뜻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 찾기는 두렵다. 자녀들의 당부도 있고 TV에서 나오는 ‘여전히 코로나19 확산세와 변이바이러스가 위험하니 집밖 출입을 삼가라’는 방역당국의 지침도 어르신들은 잘 지키고 있다.

청도군 매전면 호화리 마을회관 앞에서 따뜻한 가을볕을 따라 해바라기 하고 있는 김명휘 (78) 씨는 추석 준비를 어떻게 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추석 명절도 명절이지만 코로나 때문에 명절에 찾던 자식들 발걸음도 끊어졌다”라며 “이제 시골엔 아이들이 없어 초등학교도 문을 닫고 노인들만 늘어나고 있어 1~20년 후엔 우리 마을도 사람 구경하기 쉽지 않을 거야”라며 외로움을 전한다.

▲ 지난 10일 청도군 유천마을의 한 식당에서 마른고추를 다듬고 있다

 

군위 한밤마을 돌담 안 마당에서 고추를 말리고 있던 한 어르신은 “전에 명절 같으면 손주들이 시끌벅적 뛰어다니고, 전부치는 기름 냄새며 송편 빚으며 오랜 만에 못 다한 이야기 나누는 자식들, 며느리들 모습 옆에서 지켜보는 것 만해도 마냥 흐뭇했는데”라며 “지금은 그런 명절은 기대도 안 해, 코로나 끝나고 가끔씩이라도 손주들 얼굴이라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올 추석도 모이면 안돼요" 벌초 대행 서비스와 선물 택배만 성업

▲ 2019년 1만 7만 건이었던 벌초대행이 지난해에는 2만 4천 건으로 급증했다. 전국의 산림조합과 농협에서는 고향방문이 어려운 출향객들을 위해 벌초대행을 하고 있다. 산림조합의 한 관계자는 “이미 큰 묘지들은 대부분은 벌초 서비스를 마쳤고 한 두기씩 있는 소형 묘지들의 마무리 벌초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향 마을은 비어가지만 들녘의 벼들은 어느새 고개를 숙이고 익어가고 있다. 양지바르고 야트막한 동산에 위치한 산소들은 대부분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명절을 맞아 지난여름 무성해 진 조상의 묘 봉분 벌초를 일찌감치 끝낸 경우도 많지만 그 못지않게 벌초 대행이 고향마을의 새로운 풍속도가 되었다. 명절에 맞춰 고향을 찾기 어려운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조상 묘 벌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형제와 친척이 모이는 것이 쉽지 않아지면서 벌초대행이 일반화되고 있는 추세다.
 

▲ 군위군 한밤마을 과수원에서 수확한 사과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군위군 군위읍 용대리 야산에서 벌초 대행 작업 중인 박기석(65)씨는 “2인 1조로 벌초 작업을 하는데 서울, 대구 등에서 벌초의뢰가 많이 들어온다.”며, “남의 집 조상의 묘이지만 우리 부모님 묘처럼 정성스럽게 벌초를 한다. 오늘은 새벽부터 시작했는데 모두 17기를 벌초하게 된다”고 말했다.
농협도 코로나19를 계기로 벌초 대행 서비스 규모를 늘리면서 이용자들의 부담을 덜고, 농가의 소득에도 보탬을 주고 있다. 고향에 방문하지 못하는 자식들은 부모에게 홍삼 등 건강식품과 한과세트, 영양제 등 추석선물로 죄송한 마음을 대신하고 고향의 부모 역시 역귀성조차 어려워지자 수확한 농산물을 자식들에게 보내느라 우체국을 비롯한 택배업체들은 대목을 맞고 있다.

- 아내와 함께 고향마을 지키는 상주 최환수 이장
▲ 지난 11일 오후 최환수 이장과 장모, 아내 김순희 씨가 집 앞마당에서 햇 땅콩을 들어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7년 전 아내가 자신의 고향인 상주에 가서 살자는 말에 최환수(63) 이장은 서슴없이 짐을 챙겼다. 부산에서 건축업에 종사했던 최 이장은 사업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고, 자신의 부모는 모두 돌아가신 상태여서 사랑하는 아내의 제의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자신이 먼저 내려와 장인과 장모를 돌보면서 상주시 낙동면의 대표 농산물인 오이 농사를 차근차근 배웠다. 귀농 당시도 마을에 젊은이들이 별로 없어서 농사나 힘든 일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주로 했다. 최 이장도 이듬해 부산의 살림을 정리하고 내려온 아내와 본격적으로 오이 농사를 시작했다. 상주의 겨울오이는 특히 전국적으로 유명해 외국인 근로자들과 함께 열심히 농사를 지어 어느 정도 자리도 잡았다.

 

▲ 고향마을에는 해가 갈수록 빈집이 늘어나고 있다. 사람이 떠난 집에는 잡초만 무성하다. 

최 이장은 몇 년 전 장인이 돌아가신 후 홀로 사시는 장모님을 바로 옆집에서 모시며 지낸다. 최 이장이 살고 있는 상주시 낙동면 화산 2리에는 총 37가구에 40명이 모여 산다. 마을에 경로당이 2개나 있을 정도로 한때는 큰 마을이었다. 젊은이들은 떠나고 그 사이 마을 어르신들도 한 분 두 분 돌아가시면서 빈집만 늘어났다. 농사일도 쉴 틈 없이 바쁘지만 마을에 젊은 사람이 없어 외지인인 최 씨가 이장 일도 맡게 되었다. 천성이 부지런하고 붙임성 좋은 최 이장은 이 마을 맥가이버로 통한다. 홀로 사시는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어서 온 동네 대소사는 물론 마을 어르신들이 찾으면 농사일을 하다가도 바로 달려간다. 마을 전체의 사위이자 아들이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늦은 시간 마을에 들어서면 해가 지날수록 불이 켜지지 않는 집들이 늘어나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최 이장은 남아계신 마을 어르신들을 잘 보살펴 오래 건강하길 바랄 뿐이다.
▲ 경북 군위군 부계면 한밤마을의 한 농가에서 할머니가 가을하늘 아래 여유롭게 고추를 다듬고 있다.

최 이장이 화산2리에 들어 온 이후 마을에서 아기울음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고, 인근의 초등학교도 입학생이 없어 폐교 위기에 몰려있다. 명절을 앞두고 있어서 벌초하러 온 차량들과 선물을 들고 차에서 내리는 출향객의 모습이 간간히 보이긴 하지만 굳이 코로나19 핑계를 대지 않아도 앞으로 북적이는 명절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최 이장은 “지금 부모님 세대가 끝나면 고향 집을 찾고 선산을 찾아 직접 벌초하는 일들은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도 이 지역의 젊은 사람들은 태국 등 동남아인들이 대부분이지만 코로나 사태가 풀리면 더 많은 외국인들이 몰려들 것”이라며 “앞으로 고향을 떠난 자식들이 부모와 일가친척 없는 고향에 내려오면 낮선 이방인이 대부분 마을을 차지하고 있어 고향은 더 이상 자신들의 어릴 적 고향이 아닐 것”이라고 강조했다.
▲ 화물열차가 달리는 경북 군위군 산성면 화본리 마을 전경. 화본역을 중심으로 아직 옛 풍경이 남아있는 고향마을이다.(드론 촬영)

오랜만에 부모와 친지를 만나 두터운 정을 나누는 소중한 명절, 민족의 대이동으로 표현되는 한가위 풍경을 올해도 변함없이 볼 수 있을지, 아니면 고향마을 담장 아래로 활기차게 뛰어다는 아이들과 길게 줄지어선 차량들이 그리운 옛 추억이 되고 말지… 어째든 추석 명절 연휴가 시작되었다.
▲ 상주시 낙동면 용포리 다락논의 벼들도 알곡을 달고 고개 숙여 익어가고 있다.

상주시 낙동면 용포리 마을 어귀 낮은 언덕 길 시멘트 포장을 따라 올라가다 만난 할머니는 “언젠가는 고향마을이 통째로 사라질까 걱정된다.”라며, “우리야 이대로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지만 젊은 사람들이 한 명도 없으니 앞으로 농사는 누가 짓고 마을은 누가 지키나” 며 한 숨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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